대한민국 코리아 격하게 사랑하니?
민족사 의식이 높아야 통일한국의 단군왕검 대통령이 된다!
Dschinghis Khan - Moskau
대한민국 코리아의 국조-봉황
용(중국)이 떠 받치고 있는 백제 대향로
[산해경]"봉황이 사해를 날면 평화가 온다."
만주.한반도.요서.열도 등 단군한국를 다물하고
동아시아 정치.경제.군사질서를 주도했던
코리아태왕의 공적을 새긴 세계 최대의
자연석 태왕비문과 거대한 코리아태왕릉은
분단을 극복하고 대한민족이 웅비하기를
울부짖으며 명하고 있다.
아래 표는 장구한 900년 고구려 역사 기간에 수 많은 중국 국가들의 존속 기간 및 존속 년수를 나타낸다. 고구려가 존속하는 동안 차이나의 국가는 무려 35개 국입니다. 고구려 900년 역사에 비하면 오래 가야 50-200년 이내였다.
어디가 중앙정권일까? 중국을 차지했던 한국배달역사와 혈통이 장구한 고구려가 중국의 중앙정권이다. 그리고 중국이 시조로 삼는 황제헌원은 고구려의 시조가 되는 신시배달국의 신하로 우리 한민족에게는 고시례(배달국 초대 농림장관)로 유명한 고시씨의 후손인 배달국의 장수인 소전씨의 방계후손에 불과하니 중국의 진정한 부모국은 고구려입니다. 뿌리와 조상을 몰라 보고 뿌리와 조상 행세하면 천벌받아 망하는 법이다.
대한민국의 국제적 국호가 코리아, 즉 고구려다. 중국이 고구려를 대한민국 역사가 아니라고 주장할 명분이 없다. 고구려사 중국사라고 한다면 중국이 국호를 코리아라고 사용했을 거니까.
그리고 지금의 중국이라는 국호도 단군한국의 선인이였던 유위자가 정해준 것이라고 공자의 7대 후손 공빈이 동이열전에서 진술하고 있습니다. 단군한국없이는 지금의 중국도 없다는 명백한 사료적 증거다.
일본이야 한반도에서 건너간 고대 한국인들이 만든 나라니 당연히 한국이 일본이 부모국이니 말할 것도 없고,일본문명의 시작인 야요이 문명이라는 것이 전라도 영산강 중심의 마한인들이 문명임이 고고학적으로 입증된지 오래다. 일본 고대무덤을 상징하는 열도 전역의 전방후원분은 영산강 중심의 서남해 토착무덤이다.
진실날조와 역사날조는 열등감이 강한 나라와 집단이 하기 마련이다.유구한 역사와 정통을 자랑하는 나라와 집단은 그럴 필요가 없다.
중국이 대국이라는 인정을 받고자 한다면 고구려사가 한국의 역사임을 인정하고, 통일한국의 국경선도 고구려가 천리장성을 쌓아 지키고자 했던 요하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100년전 대한민국의 고토였던 만주를 통일한국에 양도를 하여 만주를 매개로 중국과 한국이 전쟁과 대립을 사전에 청산하고 공존번영하는 현명한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자료]다물해야 할 고토 만주
위 사진은 인공위성에서 찍은 한국과 중국의 야경이다.
만주지역에 이처럼 불빛이 선이 있다. 그 선을 따라 큰도시들이 많다.
북한 지역은 평양 외에는 불빛이 별로 없죠.
세습독재와 배타.폐쇄주의의 결과물이죠...
저런 정신병동집단을 추종하며 종노릇하면서
민주주의와 진보를 외치는 종북집단은 격리시켜
정신병원에 집단입원해야 할 대상들이다..
[헌법4조]자유민주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지향한다
[형법93조]적과 짝하여 대한민국에 대적한 자는 사형
만주 지역에 유독 불빛이 밝은 선이 있다.
이 선은 영류왕 때 연개소문이 쌓은 고구려 천리장성이 있던 선이다.
구글지도
지도에 보아도 고구려 천리장성을 따라서 많은 대도시들이 즐비하다.
천리장성 주변에는 고구려의 영향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다 하겠다.
고구려 천리장성
고구려 철갑기마무사 - 고구려 벽화
그런데 고구려는 왜 저 지역에다 천리장성을 만들었을까?
[고인돌 주요 분포도] - 출처 : http://myhome.shinbiro.com/~kbyon/khome.htm
고인돌 집중지역은 고대 한국의 중심영역이기 때문에 한민족으로서 요하 동쪽 만주를 절대 사수해야만 했던 절대절명의 선택이었으므로 고구려가 마지노선인 요하지역에 천리장성을 쌓았다고 볼 수 있다.
고조선의 직할영역은 석관묘(돌로 만든 관을 쓴 묘)가 집중되어있는 위와 같은 영역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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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왕손 4만명 이상이 남한에 살고 있다. <- 관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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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족인 동이족의 땅이였던
산동 곡부출신의 동이족 공자의 7대 후손인
공빈은 동방 한국을 명확히 진술하였다!
공자의 후손 공빈은 북부여시조 해모수가 등장하는
단군한국 말기에 해당하는 서기전268년에
글을 남겼는데 중요한 것만 추려 본다.
"단군은 신인(神人)이며, 구이(九夷)의 임금이 되었다.
순임금은 단군조선 출신으로 중국의 천자(天子가 되었다.
동이족 소련과 대련이 상례를 잘 치러 선조 공자가 칭송하였다.
도산회의에 태자부루(단군왕검 천왕의 장자)가 친히 왕림하였다.
중국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유위자는 동이(단군한국)의
유명한 선인으로 이윤의 스승이며
이윤은 은나라 탕왕의 지혜로운 재상이 되었다.
구이 중에서 동이(東夷)에 해당하는 단군한국은
비록 그 나라가 크나 교만하지 않고,
비록 국력이 강하나 남의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다.
동방 예의 군자국이다.
선조 공자가 동이에 살고자 하였다."
[원문]
東方有古國 名曰東夷
星分箕尾 地接鮮白
始有神人 檀君 遂應九夷之推戴而爲君 與堯竝立
虞舜 生於東夷 而入中國 爲天子至治 卓冠百王
紫府仙人 有通之學 過人之智
黃帝受內皇文於門下 代炎帝而爲帝,
小連大連 善居喪 三日不怠 三年憂 吾先夫子稱之,
夏禹塗山會 夫婁親臨 而定國界,
有爲子 以天生聖人 英名洋溢乎中國
伊尹受業於門 而爲殷湯之賢相
其國雖大 不自驕矜 其兵雖强 不侵人國,
風俗淳厚 行者讓路 食者推飯 男女異處 而不同席
可謂東方禮儀之君子國也,
是故 殷太師箕子有不臣於周朝之心
而避居於東夷地
吾先夫子 欲居東夷 而不以爲陋,
吾友魯仲連亦有欲踏東海之志
余亦欲居東夷之意
往年賦觀東夷使節之入國其儀容有大國人之衿度也,
東夷蓋自千有餘年以來 與吾中華 相有友邦之義
人民互相來居往住者接踵不絶,
吾先夫子 印夷不以爲陋者 其意亦在乎此也,
故余亦有感而記實情以示後人焉
魏 安釐王 十年 曲阜 孔斌 記
민족사 의식이 높아야 통일한국의
단군왕검 대통령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