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제국이 중앙아시아로 팽창하기 시작한 것은 짜르 이반 4세 시대 이후
카잔 제국과 아스트라칸국을 차례로 멸망시킨 이후였다.
1554년 이반은 우랄 산맥을 넘어 펼쳐진 방대한 중앙아시아로의 진출을 시도하여
그로부터 20년 후에 우랄산맥을 넘을 수 있었다.
이들은 시베리아에 진입하여 타타르칸 큐축의 수도인 시비르를 점령함으로 러시아인들의 왕래를 공식화하였다.
1579년부터 1584년 사이의 대규모 침략을 통해 시비르를 점령함으로써 러시아인들의 중앙아시아 지역 이민이 시작되었다.
러시아인들은 처음에 시베리아로 갔다가 점차 몽골족 거주 지역으로 유입되어 60년이 채 지나지 않아
태평양 연안까지 도달하였다.
1604년에 오브강 연안에 톰스크, 1632년에 야쿠츠크, 1638년에 오호츠크, 1648년에 캄챠카가 차례로 건설되었고,
1651년에는 이민온 러시아인들이 몽골인의 영토 바이칼호 근처에 도시 이르쿠츠크를 세웠고
1666년에는 만주족의 영토인 흑룡강(아무르) 유역에 알바진을 건설하였다
러시아인들은 곡식을 생산할 땅과 광물 자원을 찾아서 흑룡강쪽으로 남진하였는데,
1644년에 포야르군프, 1649년에는 하바로프의 탐험원정대가 흑룡강에 이르러 그 지세 등을 조사하였다.
1651년 흑룡강 북쪽인 야커싸[雅克薩] 하구에 알바진성을 건설하여 군사 ·식민의 근거지로 삼았다.
하바로프가 알바진성에서 다시 흑룡강 동쪽을 따라 내려와 1652년(효종 3) 우쑤리강[烏蘇里江] 하구에
아찬스크(지금의 하바로프스크)성을 구축하자 그 지방의 원주민인 아창족(阿槍族)과 충돌하였다.
아창족은 당시 그들을 통치하고 있던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하여 청나라와 러시아 간에 충돌이 일어났다.
그때 청은 중국 본토의 공략에 몰두하고 있어서 만주 수비가 허술했던 관계로 1차 원병은 러시아군에게 패퇴당하였다.
즉, 청은 영고탑(寧古塔) 도통(都統)이 2,000명의 병력으로 러시아군을 공격했으나 총포를 가진 러시아군에게
패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러시아가 더욱 적극적으로 남진을 계속하자 1654년(효종5년) 1월 청나라는 사신 한거원(韓巨源)을
조선에 보내 3월 10일까지 영고탑(寧古塔)에 도착할 것을 요구하는 계문을 주고 원병을 요청하였다.
효종은 영의정 정태화(鄭太和)의 의견에 따라 원병을 보내기로 하고 함경도 병마우사 변급을 사령관으로 삼았다.
변급은 정예 조총병 150여 명을 거느리고 1654년 3월 26일 두만강을 건너 4월 16일 청나라 군대 3,000명과 영고탑에서
합세해서 다시 출발하여 후퉁강[厚通江:混同江]에 이르러 러시아군과 접전, 호통(好通:依蘭)에서 격파한 뒤
5월초 주위 5리의 토성을 쌓아 놓고 16일에 회군하여 6월 13일에 영고탑에 들어와서 7월에 돌아왔는데,
이것이 제1차 나선(러시아) 정벌이다.
1658년(효종 9) 2월 19일에 청나라는 재차 구원병을 요청해 병마우후 신류(申瀏)가 선발된 정예군 200여 명과
초관(哨官)·기고수(旗鼓水)·화정(火丁) 60명을 인솔하고 3개월분의 군령을 가지고 그해 5월 초에 영고탑으로 향하게 했다.
조선군은 6월 5일에 승선하여 송화강의 본류로 나아가 6월 10일에는 멀리 흑룡강(아무르) 합류점까지 이르러
러시아의 지휘관 스테파노프(Stepanov) 선대와 격전을 하였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8명의 전사자와 25명의 부상자가 났으나, 조총수의 위력을 과시함으로써
스테파노프를 비롯한 러시아선 10척을 불태우고 적군 270명을 사살하는 등 대부분을 섬멸시켰다.
전투직후 청의 요청에 따라 송화강 방면에 머무르다가,
그해 11월 18일 영고탑을 떠나서 12월 12일에 회령(會寧)에 귀환했다.
이것이 제2차 나선정벌이다.
이 전투의 결과로 러시아와 청나라는1689년 8월 27일,
아무르 강 주위에 있는 네르친스크의 작은 마을에서 최초의 조약을 맺게 된다.
이 조약에 의해서 러시아는 오호츠크해에 대한 통제권을 잃는 대신 청나라 영토내에 무역소를 설치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과 러시아간 갈등의 원인을 제공했던 알바진의 러시아 전초 기지는 버려진 채 파괴되었다.
러시아와 청나라의 국경선은 스타노보이 산맥과 아르군 강의 위치에 따라 설정되었다.
그러나 그후의 전세에서 청이 집요한 러시아 공세에 밀리고,
청은 저네들의 이익에 비교적 영향이 작은 흑룡강 이북, 연해주를 차례로 내주게 된다.
청을 침범하지 않으면 시비안하겠으니 능력있으면 가지라고 그저 종이에 싸인해 준 것이다.
시베리아, 흑룡강(아무르), 연해주의 동이족 명맥은 러시아 제국의 동아시아 진출로 멸망하기 시작한다.
청하고 러시아가 전쟁도 하고 조약도 맺으면서
시베리아, 흑룡강, 연해주 동이족 영역을 러시아가 모두 차지했다.
폭군으로 유명한 러시아 황제 이반 4세, (1530 ~ 1584)
'이반 그로즈니'로 불리웠는데, 이는 '잔혹한 이반' 이라는 뜻이다.
'이반 뇌제'로 번역하기도 한다.
정신이상
말년에 며느리를 유산시키고 아들을 때려 죽였다.
시베리아를 점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