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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백우영의 몽당연필] 어떤 자격이나 조건보다 앞서야 하는 말 ‘사람’

Dr.박 2016. 1. 1. 16:10

원문 보기 : http://www.gosc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457


어떤 자격이나 조건보다 앞서야 하는 말 ‘사람’
백우영의 '몽당연필'(9)
[0호] 2015년 11월 12일 (목) 10:59:02백우영  jacoyeper@hanmail.net


제법 차가운 비가 내립니다. 어제는 마치 봄날 꽃잎처럼 아름답게 흩날리던 은행잎들이 오늘은 비에 젖은 채 길바닥에 달라붙어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바람도 제법 불건만 저 은행잎, 잔뜩 움츠리고 그 무엇에도 관심 없는 듯 그렇게 엎드려있습니다. 딱 오늘 저의 모습입니다.


한참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뒹굴거리다가 뭐라도 하자싶어 책을 펼쳐 들었습니다. 한 달여 전 이미 읽은 책이었지만 다시 집중해서 보아야겠다고 맘을 먹으며 메모지, 형광펜, 잘 다듬어 깎은 연필까지 옆에 챙겨들고 앉았습니다.


  
▲ 자이니치의 삶, 사람이 먼저임을 다시한번 생각케 합니다. 《일본제국주의 vs. 자이니치》 (이범준, 북콤마) ⓒ백우영

 

일주일 전 제가 일하는 카페에서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마련했던 바로 그 책입니다. 그 시간에 들려온 이범준 작가의 목소리는 사뭇 신뢰 넘치는 목소리였습니다. 예정했던 시간을 훌쩍 넘겨가며 이야기가 오갈만큼 많은 질의응답 속에 자이니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작가는 광복70주년 기획으로 일본에 머무르며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3년간 취재를 했습니다. 기자이기도 한 그의 자료수집과 인터뷰과정 등을 들어보면 가히 고개가 숙여질 정도입니다. 책 속에서 저자는 객관적인 자료를 기반으로 독자에게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어찌 보면 그동안 그저 감정적으로만, 그리고 조선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동포들을 바라보던 제게는 쉽게 대답하기 힘든 질문들이었습니다.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 오늘, 아무래도 이야기가 좀 무거워 질 것 같습니다. 많은 부분 위 책의 내용을 기반으로 서술했음을 미리 밝힙니다.


(자이니치 변호사인) 배훈은 서울 유학을 거쳐 한국어를 하게 됐습니다. 한국적에, 한국 이름에 한국어를 합니다. 1년에 몇 번씩 한국에 옵니다. 이제 한국인이 된 것일까요. 하지만 일본에 세금을 내고, 일본 정치를 걱정하고, 일본에서 인생을 마칠 계획입니다. 그럼 일본인이 된 것일까요.


(자이니치들은) 국적만은 온갖 어려움을 참아가며 유지하고 있습니다. 주민표에 적힌 조선·한국 표기는 가족 이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왜 그럴까요. 자이니치들은 무엇을 위해 국적을 악착같이 유지하는 것일까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1945년 해방 이후 자이니치들은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일까요. (중략) 우리가 돌아보지 못하는 사이 우리의 형제들은 일본에서 무슨 일을 겪은 것일까요.


자이니치는 언젠가 돌아올 동포입니까, 아니면 일본에서 운명을 결정할 사람들입니까.


자이니치는 일본제국의 식민 지배를 계기로 일본에 살게 된 조선인과 그 후손입니다. 일본은 전쟁이 끝난 후 일본국 헌법을 만들면서 초안에 있던 인민(人民)이라는 단어가 아닌 국민(國民)이라는 단어로 주체를 삼음으로써 모든 기본권을 국민에게 두었습니다. 해방과 더불어 일본에 살던 조선인들의 일본국적을 박탈한 채로 말입니다. 조국에는 아직 정부가 들어서기 전, 따라서 자연스레 출신지인 조선반도를 나타내는 ‘조선’으로 그 적(籍)을 둔 자이니치들, 일본에 거주하지만 일본국민이 아닌 조선인들은 그 어떤 기본권도 누리지 못한 채 생존하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합니다. 일본처럼 한국 또한 대다수의 나라들의 헌법과 달리 인민(people)이 아닌 국민을 헌법의 주어로 삼음으로 국적을 인권의 기본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보호해주지 않는 나라에 살면서 세금을 내고 그 나라의 정치에 의해 자신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삶. 자이니치의 삶은 그런 살얼음판 위의 삶이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살면 되지 않느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하기엔 우리의 시선이 아직은 그들을 똑같이 우리 공동체의 일원으로 대할 만큼 성숙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한국으로 시집온 어느 자이니치 새댁은 씁쓸하게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간첩일지도 모르니 조심하라’고 남편 친구가 남편에게 사뭇 진지하게 이야기하더라는... 분단의 역사가 만들어낸 슬픈 우리의 현실입니다.


책의 저자 이범준 기자는 서문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아무런 소리도 흔적도 없이 사람을 배제하는 사회에서, 말라 죽지 않고 살아남은 그들의 삶을 반드시 기록해야한다고 거듭 다짐했습니다.


아무런 소리도 흔적도 없이 사람을 배제하는 사회, 자이니치들에겐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 또한 그런 사회가 아니었을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에서 조선학교에 다니는 동포 아이들은 그래도 참 행복한 아이들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학교라는 울타리가 있어서 그래도 아이들은 보호받으며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켜나가고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당당함을 키워나갈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라도 더 조선학교는 지켜지고 이어져 가야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자는 조선학교 이야기를 다룬 장의 마지막에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한국학교는 거의 그 역할을 감당해 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자이니치에게는 조선학교가 아니면 일본학교입니다. 조선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받느냐, 일본학교에서 일본 교육을 받느냐의 문제입니다. 옆에서 보기에도 당연한 선택지입니다. 이제 조선학교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조선학교 재학생은 모두 일본국 납세자입니다. 조선학교 재학생 중 과반수는 한국적입니다.


그동안 본국의 북쪽 절반에서만 인정받고 지원받던 조선학교. 이제는 그나마도 예전과 같은 지원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조선학교는 정말 이대로 계속 작아지고 결국에는 사라져야하는 걸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자이니치들과는 물론 역사적인 배경이 같진 않지만 우리 땅에 와 있는 이주노동자들과 이 땅에서 태어난 그 자녀들의 삶도 잠깐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사람’. 그래요. 그 어떤 자격이나 조건보다 앞서야 하는 말 ‘사람’. 자격이나 조건을 붙여가며 우리를 창조하진 않으셨겠지요. 제가 믿는 그 분은.


참으로 단순한 그 진리가 많은 벽에 가로막히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차가운 빗물을 핑계로 납작 엎드린 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 하는 비겁함을 제 안에서 종종 발견합니다. 그러나 찬비에 미동도 하지 않고 납작 엎드린 은행잎도 비가 그치고 바람이 불면 다시 흩날리겠지요. 꽃잎처럼 아름답게… 찬비가 그칠 그날이 어서 오기를, 아니 찬비에도 굴하지 않고 아름답게 흩날릴 숱한 은행잎들, 그리고 노란 물결을 만들며 함께 힘 모아 그 가로막힌 벽을 가뿐히 넘어가는 그날이 어서 오기를 기도합니다. 

 

백우영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운영위원, 《아프리카 당나귀》 저자.

※ 일본에 있는 재일동포들이 만들고 가꿔가고 있는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몽당연필”은 현재 서울시에 등록되어 있는 비영리 법인단체다. 일본 내 조선학교와 우리 동포들의 평등한 권리를 위해 다양한 교류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배우 권해효가 그 대표를 맡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mongdang)


출처 :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글쓴이 : 몽당연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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