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스크랩] 고조선과 선비족

Dr.박 2015. 10. 25. 01:49

고조선과 선비족

 

환단고기에는 32세 추밀 단군 3년(BCE 847)에 '선비산鮮卑山의 추장 문고가 공물을 바쳤다.'는 기록이 나온다.

 

「후한서」에는 선비와 오환을 모두 동호東胡(번조선)의 후예라 했다.

이를 볼 때 선비는 고조선에 속한 기마민족 가운데 하나였다.

선비족의 발상지를 「위서魏書」에서 대선비산大鮮卑山으로 꼽았는데, 이 대선비산이라는 산 이름에서 선비족이라는 족명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대흥안령 일대가 대선비산이라는 사실은, 1980년에 중국학자가 대흥안령 북단 알선동嘎仙洞 동굴 벽에서 북위 시대의 석각 축문을 발견함으로써 입증되었다.

선비족의 기원은 고조선에 속한 동북 지방이었던 것이다.

 

북흉노가 1세기 말 멀리 중앙아시아 초원으로 떠나 버리자 흉노의 본거지이던 몽골 고원은 일시적으로 공백지대가 되었다.

흉노의 동쪽에 있던 선비족이 승리하여 북방지역을 통일하였다.

2세기 중반에 단석괴檀石槐라는 영웅이 나타나 선비의 여러 부족을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여 동부, 중부, 서부의 삼부체제로 선비제국을 건설했다.

단석괴의 선비제국은 북으로 바이칼호, 서로 신장의 일리강, 동으로 부여까지 걸치는 넓은 땅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선비제국도 다른 유목민들이 세운 다른 제국처럼 여러 부족집단들의 연합체였다.

 

단석괴가 사망하자 선비제국은 순식간에 여러 집단로 분할되었다.

가비능軻比能이라는 인물에 의해 일시 세력을 회복하지만 235년 그가 암살당하자 선비제국은 각 지역으로 분산, 할거하면서 대대적인 이동이 일어났고 남하하여 북중국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탁발, 모용, 우문, 단, 걸복 등 여러 선비 부족은 5호 16국의 주역이 되었다.
탁발부의 대국代國이 북중국을 통일하여 북위(386~534)가 되었고 북위에서 나온 북주의 귀족인 양견이 패권을 잡고 수나라를 세웠다.
수를 뒤이어 당나라를 개국한 이연李淵도 선비족 출신이므로 당나라 역시 선비족이 세운 나라가 된다.
수와 당은 모두 고조선에 기원을 둔 북방 민족이 세운 나라인 것이다.

 

3세기 말이 되면 화북지역에 거주하는 유목민의 숫자가 600만∼700만 명에 이르게 되는데, 당시 한족漢族의 인구가 1,000만 명 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북방족이 남하했는지 알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민족대이동의 물결 속에 일부 유목민은 북중국이 아니라 한반도로 내려왔다.

 

 

그들 중 일부는 신라에 정착하였다.

4~5세기경에 조성되기 시작한 신라의 대형 적석목관분 무덤에서 중앙아시아의 문화적 기류를 느끼게 하는 유물이 대거 발견되는 것은 이들이 들어왔음을 증명한다.

다양한 마구, 커다란 솥인 동복, 동물 양식의 버클, 아키나케스식 단검, 유리제품 등이 그러하다.

 

흉노와 선비족이 일으킨 이동의 파도는 유럽의 서로마 제국의 멸망을 가져오고 중국에 북방 민족이 중원을 장악한 5호 16국 시대를 열었다.

한반도 남부와 일본에 기마민족의 정권을 성립시켰다.

한마디로 말해 동북아의 중심이었던 고조선의 문화적 자양분을 흡수하며 동북아의 북방에서 뻗어나간 유목민의 대이동이 유라시아 대륙의 역사를 크게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거란 契丹

 

거란은 요하에서 일어난 한민족의 한 갈래이다.
거란은 고구려 광개토열제의 정벌을 받은 뒤로 오랫동안 고구려의 속국으로 있었다.
한때 당唐에도 예속된 적이 있었으나 당나라의 멸망으로 5대 10국 시대가 되면서 북방에 무서운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916년에 대진을 멸망시켰고, 송宋을 남쪽으로 밀어내고 중원의 북방을 차지하여 몽골, 만주, 북중국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거란의 본거지는 본래 요령성인데 단석괴 시대(182년)까지 선비씨鮮卑氏라 하였다.
그후 약낙괴에 이르러 모용씨가 연燕을 세우니 이 때 부족이 나누어져 우문, 고막해, 거란 삼족이 되었다.(314년)

 

거란이 세운 요遼나라의 정사正史인 「요사遼史 세표世表」에 거란이 생겨난 유래에 대해 상세히 전한다.

"흉노 모돈(묵돌)에게 패한 동호東胡는 선비산에서 보전하고 있었는데 선비씨라 하였다.
그 후 모용씨의 연이 선비를 파하자 그 부部를 나누어 우문, 고막해, 거란이라 하였다.
거란의 이름이 이에 비로서 생겨났다."

 

여기에 보이는 거란의 선조인 동호는 두 가지가 있다.

연나라 장수 진개를 볼모로 붙잡고 있었던 동호는 바로 고조선이다.
사마천이 「사기」에서 고조선의 국호와 강성한 국력을 감추기 위해 동호로 왜곡한 것이다.

 

또 하나는 동몽고, 대흥안령 일대와 중국 하북성 북쪽 지역에 걸쳐 있었던 동호를 말한다.
이 동호는 BCE 200년 경, 한고조 유방을 굴복시킨 흉노의 대영웅 묵돌 선우에게 멸망당하여 오환산과 선비에서 숨어 보전하며 오환과 선비족이 되었다.
이 동호 역시 조선족의 한 갈래이다.

 

「요사 세표」가 말한 바와 같이 선비족이 나누어져 우문, 고막해, 거란이 되었다.
고막해를 후세 몽골족의 전부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고막해, 거란이 후세 몽골족의 주축이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 문정창, 「한국고대사」하, 290~303쪽 )

 

12세기 초에 이르러 거란 제국은 여진족의 금나라에게 멸망당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금나라로 계승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금나라는 여진족과 거란족이 연합한 정권이기 때문이다.

 

 

거란 부족의 시조에 대해 「요사遼史 지리지地理誌」 영주永州 조에서는 "전설에 따르면, 한 신인神人이 흰 말을 타고 마우산으로부터 토하(노합하)를 따라 동쪽으로 갔고, 한 천녀天女는 푸른 소가 끄는 달구지를 타고 평지송림으로부터 황하潢河(황수=서요하)를 따라 내려왔다.
목엽산木葉山에 이르러 두 강이 합류하니 서로 만나 배필이 되어 여덟 명의 자식을 낳았다.
그 뒤로 족속이 점차 번성해져 팔부로 나뉘었다"라고 하였다.

이로써 보면 거란족이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옛 고리국藁離國 일대를 근거로 하여 일어났음을 알 수 있는데, 이 지역은 오랫동안 배달 겨레가 살던 터전이다.


이 고리국은 북부여 시조 해모수와 후북부여(졸본부여)를 세운 동명왕 고두막한이 태어난 고향이기도 하다. ( 「단군세기」, 「논형」, 「위략」, 「후한서」 등)

따라서 북부여의 모체라 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고리국이다.

 

그리고 대진(발해)때 오경五京의 하나인 서경압록부가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요나라의 도읍인 상경임황부(지금의 요하 상류 임황)가 자리 잡았는데, 이곳은 바로 옛 고리국의 중심부였다.
이상과 같이 거란은 한민족과 무관한 민족이 결코 아니다.
거란은 분명히 조선족(한민족)의 한 갈래인 것이다.

 

 

중국은 고조선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기 위해 요하문명론을 내세운다.
우석대 조법종 교수는 요하문명론에 대해 '만주 일대의 고대 역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하는 것을 기본 골격으로 하고 있다'고 하면서,
'중국은 요하문명론을 바탕으로 하여 북방의 모든 소수민족은 황제헌원의 자손이라는 논리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현재 중국은 요령성박물관에 요하문명전을 상설 전시하며 이같은 논리를 지속적으로 전파하고 있다.
이 전시에 대해서도 조 교수는 '중국은 비파형 청동검과 고인돌로 대표되는 한국의 청동기 문화를 중국 문명으로 바꾸어 전시하여 한국 고대 문화의 토대를 제거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 조법종, '요하문명론분석', 「한중 관계와 한반도」, 191쪽 )

 

요서에서 발견된 가장 오랜 신석기 문화는 8,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소하서 문화이다.

중국은 이 문화를 '인류 최고最古의 신석기 문화'라고 규정하였다.

 

그런데 소하서 유적은7,000~8,000년 전에 말들어진 발해 연안 빗살무늬토기와 그 연대가 일치한다.

발해 연안 빗살무늬토기는 그 재질과 모양이 만주와 한반도에서 출토되는 빗살무늬토기와 같은 계통이다.

이것은 소하서 문명의 주인공과 동방 한민족의 강한 연관성을 보여 준다.

 

 

 

 

요서의 여러 신석기 문화 가운데 홍산문화는 세간의 가장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요령성 조양시 건평建坪현과 능원凌源현의 접경지역에서 번창했던 홍산문화는 신석기 말기의 문화'석기와 청동기를 섞어 사용한 BCE 4700~BCE 2900년경의 문명'이다.

 

1954년에 중국 학자 인다尹達는, 철광석으로 뒤덮여 산 전체가 불게 보이는 '홍산紅山'에서 이름을 따서 이 문화를 '홍산문화'라 명명하였다.

이형구 교수는 홍산문화를 '발해연안문명'으로 부를 것을 제안했다.
발해연안이란 발해를 둘러싸고 있는 산동반도, 요동반도, 한반도를 말한다.

세계 4대문명과 마찬가지로 이 문명은 북위 30~45˚에서 발생하였다.

 

그는 "지중해 문명(지중해를 둘러싸고 태동한 이집트 문명, 에게 문명, 그리스로마 문명)이 서양 문명에 자양분을 공급했듯이, 동이족이 발해연안에서 창조한 문명중국은 물론 만주, 한반도, 일본의 고대 문명을 일궈 내는 젖줄이었다"라고 밝혔다.

( 이형구·이기환, 「코리안 루트를 찾아서」, 27쪽 )

 

 

적석총(돌무덤)은 고대로부터 삼국 시대까지 계속 나타나는 동이족의 대표적 묘제墓制로 황하지역의 화하족 문명권에서는 전혀 출토되지 않는 것이다.
BCE 4000년 대에 요서(발해연안문명)에서 돌무덤을 짓고 문명을 일군 동이족은 바로 배달국의 백성이다.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돌무덤은 BCE 2000~BCE 1500년 경의 것이다.

 

이에 대해 이형구 교수는 요서 지역 사람들이 한반도로 이동했거나 요서 문화가 한반도에 전파된 결과라고 한다.
그리고 '적석총, 석관묘 등의 돌무덤이 시베리아에서 기원되었다'고 말하는 강단사학계의 학설은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요서의 돌무덤이 시베리아 것보다 1,500년을 앞서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한민족은 시베리아보다 요서(발해연안문명) 지역과 문화적으로 더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강조하고, 돌무덤 문제만으로도 우리 민족과 문화의 기원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 ( 상생방송STB, <역사특강>, "발해연안문명, 한국고대문화의 기원" 3강, 2009.8.4 )

 

 

 

(원문: 상생출판 환단고기)


* 출처: 환단고기(http://www.hwandangogi.or.kr)

출처 : sweet heart
글쓴이 : 슈프림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