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스크랩] 한국인 단일민족임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다

Dr.박 2017. 5. 13. 21:57



“한국인, 유전자 섞였지만 단일민족으로 볼 수 있다”

고대인 뼈에서 찾은 조상의 기원…“유전적 동질성 상대적으로 높아”

기사등록 : 2017.02.02 04:40

 

러시아 극동지방 동굴서 발견된

7700년 전 인류 유전자 분석 비교

울산과학기술원 공동논문 발표

“남방계 유전자가 대부분 차지

북방계 비중 극히 적게 나타나

단일민족 의문 거둬도 될 듯”



‘우리는 단일민족이다.’

40대 이후 세대라면 어릴 때부터 귀 따갑도록 들어왔을 이 명제가 흔들리기 시작한 건 불과 10여년 전이다. 믿음을 의문으로 바꿔놓은 결정적 요인은 생명공학 기술이다. 유전자 분석으로 한국인이 북방계와 남방계 동아시아인이 혼합된 집단이라는 학설에 힘이 실리면서 ‘우리가 정말 단일민족일까’라는 의문을 품게 됐다. 세월이 흘러 유전자 빅데이터를 자유자재로 다루게 된 지금, 의문이 다시 믿음으로 바뀔 가능성이 제기됐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과 영국 캠브리지대,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독일 포츠담대 공동연구진은 미국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 1일자(현지시간)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한국인을 단일민족이라고 봐도 무리 없다 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를 주도한 박종화 UNIST 게놈연구소장은 “신석기 시대에 살았던 고대인들의 유전자를 분석해 한국인의 기원을 밝힌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두만강 북동쪽 러시아 극동지방의 ‘악마문(Devil’s Gate)’ 동굴에서 1970년대에 발견된 7,700년 전 고대인 5명의 뼈에서 유전자를 채취해 분석했다. 이들은 갈색 눈동자와 삽 모양 앞니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 갈색 눈동자 유전자는 서양인과 한국인이 약간 다른데, 악마문 동굴인은 한국인 유전자와 더 비슷했다. 앞니 안쪽에 홈이 파여 삽처럼 생긴 것 역시 한국인에 많이 나타나는 특징이다. 우유 소화가 잘 안 되는 유전자, 고혈압에 약한 유전자, 몸 냄새가 적은 유전자, 마른 귓밥 유전자 등 현대 동아시아인이 전형적으로 갖고 있는 유전자도 확인됐다.

학계에선 악마문 동굴인이 현재 인근에 사는 울지(Ulchi)족의 조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근처 다른 원주민을 제외하면 현대인 가운데선 한국인이 악마문 동굴인이나 울지족과 유전자가 가장 비슷할 것으로 연구진은 판단했다. 악마문 동굴인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한국인과 거의 같았다는 점도 이런 판단의 근거다. 세포에 들어 있는 작은 기관인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는 모계(母系)로부터만 물려받기 때문에 유전적 조상을 추적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러시아 극동지방의 ‘악마문’ 동굴 입구. 이곳에서 발견된 7,700년 전 고대인의 뼈에서 추출한 유전자 일부가 한국인과 유사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제공

러시아 극동지방 ‘악마문’ 동굴의 위치. 울산과학기술원(UNIST) 제공

연구진은 이어 60여개국에 퍼져 있는 수십 가지 인족(인종집단)에 속하는 약 2,500명의 유전정보를 확보해 유전자가 얼마나 섞여 있는지, 유전자의 변화가 얼마나 유사한지 등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계산했다. 그리고 악마문 동굴인과 현대 베트남 또는 대만 원주민의 유전자를 융합했을 때 한국인과 가장 비슷한 유전자가 구성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한국인의 뿌리가 수천 년 동안 북방계와 남방계 아시아인의 유전자가 섞여 형성됐다는 기존 학설이 증명된 것이다.

지금까지 학계에선 이 학설 때문에 한국인은 순수한 단일민족이 아니라는 견해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연구진이 컴퓨터로 재구성한 고대 한국인의 유전자에는 남방계 유전자가 대부분이고 북방계 유전자는 종류나 비중이 극히 적게 나타났다. 다른 아시아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국인은 유전적 동질성이 매우 높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유전자 구성 측면에서 보면 한국인은 단일민족이라도 불러도 된다”고 판단했다.

신석기 시대 전후 동아시아인들의 유전자 구성 변화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추측해본 결과. 아랫줄로 갈수록 현대와 가까운 시기다. 한국인의 왼쪽은 북방계, 오른쪽은 남방계 인족(인종집단)이다. 색이 여러 가지일수록 다양한 유전자가 섞였다는 의미다. 한국인은 다른 인족에 비해 유전자 구성이 단순하고, 현대와 가까워질수록 남방계와 더 비슷해진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제공

7,700년 전 이전 아시아인들의 주요 이동 경로. 화살표의 색깔은 각기 다른 이동 흐름을 보인 집단을 뜻한다. 이 중 남방계의 한 집단(파란색)이 북쪽으로 영역을 확장하다가 그 전에 자리잡고 있던 북방계 집단(노란색)과 만나 한반도로 내려왔다. 이들이 향후 한국인의 조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제공

동아시아인은 과거 북극과 서아시아, 남아메리카 지역까지 광범위하게 이동하며 살았다. 그러다 약 1만년 전부터 북방계와 남방계의 생활상이 뚜렷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농사를 짓고 정착생활을 하게 된 남방계는 자식을 많이 낳으며 인구와 영역을 빠르게 확장했지만, 북방계는 여전히 수렵채집과 유목생활을 했기 때문에 세를 키우지 못했다. 전성원 게놈연구소 연구원은 “남방계가 북쪽으로 영역을 확장하다 그 전에 자리잡고 있던 북방계와 7,000~8,000년 전 이후 만나 융합한 뒤 한반도에 자리잡아 한국인의 조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현대 한국인과 중국인의 유전자와 질병 정보 등을 대규모로 분석해 동아시아인의 기원과 이동을 더 구체적으로 밝혀낼 계획이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http://www.hankookilbo.com/m/v/22a2856dcd4644dbb021af79526eac56

 

 

 

DNA 유전자를 활용해 한민족의 기원을 추적해 보니...

한민족 이야기(6)-바이칼호의 몽골리언

글 | 홍익희 세종대 교수

 

등록일 : 2015-10-26 07:25  

 


 

최근의 유전과학은 우리민족의 시원(始原)이 바이칼 호수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 뒤 이들이 남하해 요하문명과 알타이어를 탄생시켰다. 이렇듯 유전과학의 발달은 화석에서 DNA를 추출하여 인류의 유전자 지도를 작성하면서 인류의 기원과 이동경로에 대해 설득력 있는 가설을 제공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북쪽 바이칼호로 이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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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기에 육지의 30%는 얼음으로 뒤덮혀 있었다. 오늘날에는 단지 10% 정도만 얼음으로 덮혀 있다
 
태초부터 지구 역사는 빙하기와 온난기를 반복하여 왔다. 지구상에 인류가 탄생한 이후로는 대규모 빙하기는 없었지만 소규모 빙하기는 수 천 년을 주기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런 빙하기는 인류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빙하기가 오면 초원이 얼어붙고 생물군이 사라져 초원지대는 지금보다 수백 km나 남쪽으로 밀려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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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온난기가 찾아오면 북반구를 뒤덮고 있던 얼음층이 북쪽으로 물러가면서 북쪽에 새로운 초원들이 생기고 생물군이 나타났다. 초원이 북상한 것이다. 이 경우에는 사람들이 초원길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태고의 신비, 바이칼호
 
오늘날의 세계 인류는 크게 세 종족으로 나뉜다. 백인종을 포함하는 코카소이드(Caucasoid)와 황인종을 총칭하는 몽골로이드(Mongoloid) 그리고 흑인종을 총칭하는 니그로이드(Negroid)가 그것이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인간이 이러한 세 종족으로 분리된 것은 호모 사피엔스 단계로 우리 민족은 몽골로이드에 속한다.
 
간빙기가 끝나고 빙하기가 다시 오면서 몽골리언은 바이칼호 지역에 오랜 기간 갇혀 살았다. 주변이 동토의 빙하가 되어 이동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빙하기에는 바이칼호에 물이 적었고 대부분 초원이었다. 초원의 오아시스 같은 장소였다. 당시 호수의 수면은 훨씬 낮고 물고기들이 많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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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빙하기가 끝나면서 물이 차 지금의 바이칼 호수가 되었다. 바이칼 호수는 여러 가지 세계 기록을 갖고 있다. 2500만년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호수다. 그 둘레는 2,200km이며,  최대 깊이 1,742m로 세계에서 가장 넓고 가장 깊은 호수다. 수심이 깊을 뿐 아니라 물도 맑아 40미터 속까지 보인다. 330개의 강이 이곳으로 흘러드는데 밖으로 나가는 수로는 앙가라 강 하나뿐이다.
 
바이칼 호수는 가장 차가운 호수이다. 한 여름에도 1분 이상 발을 담글 수가 없다. 죽은 물고기가 부패하지 않을 정도다. 그 수정같이 맑은 물에는 세계에서 유일한 민물물개와 철갑상어 그리고 내장이 들여다보이는 투명 물고기 골로미양카가 산다.
 
오랜 고립의 역사로 바이칼호에는 동물 종이 무려 1550종이나 산다. 그 가운데 75%가 다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고유종이다. 이 비율 또한 세계 생태계 가운데 가장 높다. 이들은 세계 어느 지역의 생물과도 다르며 유전적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곧 이들 생물들은 2,500만년 동안 이 호수에서 오염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화되어 온 것이다. 바이칼호는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진화박물관이자 원시생명체 연구소다.
 
몽골로이드의 형질적 특징이 형성된 바이칼호수
 
궁둥이에 몽골 반점을 갖고 있는 몽골리언의 형성지가 바로 이 알타이-바이칼 지역이다. 이곳은 몽골리언이 성장하여 성인이 된 곳이다. 소나무, 자작나무, 전나무 등 땔감이 많아 빙하기에도 추위를 견디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들은 강풍과 추위에 적응하면서 체열 손실을 줄이기 위해 다부지고 뭉툭한 체형으로 진화했다. 찬바람을 피하려 눈은 작고 가늘게 찢어졌으며, 추위로부터 안구를 보호하기 위해 눈꺼풀에 지방이 두툼한 눈으로 바뀌었다. 또 추위에 이겨내려 두꺼운 피하지방층, 평평한 얼굴, 얇은 입술, 낮은 코 등으로 진화했다. 추위에 동상에 걸리지 않고 눈길에서 활동하는 데 필요한 특성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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쐐기형 석핵
 
바이칼호에 현재 수면만큼 물이 올라온 게 12천 년 전이라 한다. 아마 당시 사람들이 거대한 홍수를 만나 바이칼호 지역을 탈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기원전 14천경 바이칼호수 연안에서 등장한 동북아시아의 쐐기형 석핵이 불과 12천년 사이에 티벳, 몽골, 동북시베리아, 한반도, 일본까지 급속히 확산되었다. 가벼운 나무창으로 기동력을 확보한 집단이 바이칼을 기점으로 동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바이칼호 주변에는 고고학적 유적들이 무수히 널려 있다. 구석기 시대로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살았다는 증거들이다.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35만 년 전의 고고학적 유적이 전혀 발굴되지 않는다. 반면 더 추워 사람이 살 수 없었을 것 같은 이 지역에는 유적이 많다. 더구나 이르쿠츠크 대학의 학자들은 이들의 문화가 세계 어느 곳의 문화와도 다르다고 증언하고 있다.
 
빙하기가 끝나면서 이동이 시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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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 재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기원전 7197년에 세워진 세계 최초의 국가 환국의 위치가 바로 바이칼호 주변이다. 그 뒤 빙하기가 끝나 기후가 풀리면서 자연히 이들의 이동이 시작된다. 이들이 동서남북으로 뻗어 나갔다. 몽골리언의 신체적 특성은 동북아시아에서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간 체질이다.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 결과를 보면 동북아시아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으로 인디언들의 중심그룹이 이동한 것이 14천 년 전이다. 시베리아 원주민의 신화와 습속은 우리 샤머니즘의 전통과 흡사하다. 그들의 기층문화가 우리 민족의 원시문화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은 그들의 기원과 계통이 우리와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언어도 우리말과 뿌리가 같다는 게 배재대학 손성태 교수의 주장이다.
 
그 뒤 서쪽으로 간 몽골리안 국가들에는 핀란드, 헝가리, 터키를 비롯하여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부탄 등자가 들어가는 나라가 많이 있다. 그 탄이 우리나라의 이랑 똑같은 말이란다.
 
그 뒤 동이족의 중심지역도 남하하여 홍산문화 지역에 다다르게 되었다. 이곳에 사람이 정착한 것이 11천 년 전쯤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꽃핀 홍산문명은 중국의 황하문명보다 약 2천 내지 1천년 정도 앞선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들이 조선족과 흉노족으로 나눠진다. 조선족이 건국한 나라가 고조선이다. 조선시대에 오랑캐라고 불리었던 만주 일대의 민족들이 기실 모두 한 핏줄이다.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 조선족과 흉노족은 3000년 전에는 형제 동족이라는 내용이 있다.
 
 
몽골리언은 모두 형제 민족
 
역사적으로 바이칼 호수는 유라시아 유목민족들의 발원지로 그들은 모두 몽골리언의 후손들이다. 기원전 200년부터 한나라를 압박하며 북쪽 초원지대에 큰 나라를 세웠던 흉노족은 물론 중국에 북위(北魏), 북주(北周), (), ()을 건설했던 선비족의 고향도 바이칼호 주변이다.
 
4세기 후반 로마를 위협했던 훈족6세기 후반 20년 만에 만주에서부터 서쪽 비잔틴제국의 북방지역, 남쪽으로는 힌두쿠시에 이르는 세계 최초로 유라시아 동서남북에 걸친 대제국을 일구었던 투르크(돌궐)족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8세기 중반 투르크제국을 무너뜨리고 몽골 고원을 차지한 후 약 100년 동안 지배한 위구르족, 9세기 투르크 계통 몽골족 키르기즈, 10세기 요()나라를 건설하여 북송(北宋)을 압박하며 11세기까지 동방의 실질적 지배자 거란족 역시 몽골리언이다.
 
일찍이 12세기 초 바이칼호수 근처에서 일어나 대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스칸의 몽골 등 유목민족 모두가 역사적으로 바이칼호수 주변에 그 근거지를 두고 있다. 그들에게 바이칼호수는 민족의 발원지이자 성지였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유전자가 거의 같은 사람들이다. 다만 지역에 따라 시대에 따라 스스로를 부르는 호칭이나 중국인들이 이 민족들을 가리킬 때 사용한 한자들의 발음이 달랐을 뿐이다.
 
수천 년간 인류의 삶과 문명에 가장 역동적인 유목민족들의 거점 핵심지역이 바이칼 호수 지역이다. 곧 바이칼이 모든 몽골인종의 근원지였다. 일찍이 육당 최남선 선생과 봉우 권태훈 선생 등이 바이칼 호수 일대를 우리 민족의 발상지로 주목한 바 있다.
 
 
우리 한민족이 유전학적으로도 몽골리언의 원형질을 가장 잘 계승해
 
중국 동북 3성과 윈난성 일대 소수민족, 장족도 몽골리언들이다. 몽골, 중남미의 인디오들베트남도 몽골리언들이다. 중국 남부로 내려간 몽골리언은 남방계 민족과 함께 중국 문명을 만드는 주류 세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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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인 유전자 지도 
 
 
유전적으로 보아 우리 민족의 뿌리는 크게 두 갈래다. 70%는 북방계, 30%는 남방계이고, 극히 일부 유럽인과 다른 그룹이 섞여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미 이 두 계열의 사람들이 완전히 결합하여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나의 새로운 민족으로 거듭난 것으로 보고 있다.
 
빙하기가 끝나고 요하 부근으로 남하한 몽골리언들이 이 지역에 살고 있던 남방계 사람들과 섞이면서 새로운 문명을 발달시켰다. 그 무렵 먹을 게 풍부한 발해만과 한반도 바닷가와 강가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 뒤 이들이 요하 문명과 알타이 언어를 탄생시켰다. 유전자 추적에 의한 인류 이동도를 보면 한국인과 일본인, 몽골인, 티베트인, 터키인은 에스키모인, 아메리카 인디언과 유전적으로나 언어학적으로 한 묶음이다. 이른바 알타이어족이다. 언어학적으로 볼 때 이들은 약 8000년 전에 나누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우랄어(핀란드어, 헝거리어)와 셈어(히브리어, 아랍어, 고대 아키드어) 역시 비슷한 연대에 사용되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한반도와 인도 남부인의 유전자 지도가 비슷하다는 점이다. 고대로부터 두 곳 간에 사람의 이동이 많았던 것을 뜻한다. 그만큼 양 지역간에 해상 왕래가 잦았던 증거이다. 가야 왕국으로 시집 온 인도 공주 허 황후의 이야기가 신화만은 아닌 것이다.
 
우리 한민족이 유전학적으로 몽골리언의 원형질을 가장 잘 계승, 발전시켰다고 한다. 인류가 가진 미토콘드리아 DNA 유전자를 활용해 당뇨병을 연구하다 이 DNA가 인류의 이동을 알려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한민족의 기원을 추적한 이홍규 의학박사의 말이다. 한국인과 바이칼 호 주변에 사는 부리야트인이 혈연적으로 매우 가깝다는 사실은 모스크바유전학연구소의 자카로브 박사에 의해서도 규명되었다. (출처; 한국인의 기원, 이홍규, 우리역사연구재단)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3&mcate=M1004&nNewsNumb=20151018575&nidx=18576&dable=30.52.3 





출처 : 한류열풍 사랑
글쓴이 : 행복하라(生生之樂)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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